2026년 3월 1일. 이제 나는 더 이상 한빛맹학교 교사가 아니다. 지난 2월 한 달 방학 기간 동안 연가를 쓰고 스스로 낭창해질까봐 여러 선후배들을 만나다 보니 자연히 내 퇴사를 응원해 주고 격려해 주는 많은 말을 듣게 된다. 그 중 많은 이들이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해. 일이 들어올 때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아무 일도 주지 않고 찾는 사람도 없어.”
이 말을 들은 뒤부터 내 마음에는 불안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있는 일이 의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내가 쌓아 올릴 정보를 무가치하다고 여기면 어쩌지?
수익화는 차치하더라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그냥 묻히게 되면 무슨 소용이지?
하루에도 수만 명의 디지털 크리에이터가 나타났다가 조명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현실의 정글에서…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싶은. 불안감.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내 자신이 아니라 외부로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외부 요인은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 진정으로 바꿀 수 있는 건 내 자신의 생각과 마음가짐, 그리고 이를 토대로 움직이는 나의 행동과 말이다. 나는 어느새 내가 바꿀 수도 없는 것들을 스스로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공명을 바랐던가? 조명을 받아 빛나기를 바랐나? 아니면 때돈을 벌기 위해 사직했나? 그건 아니다. 너무 느슨해지지 않기 위해 시각장애인 당사자를 만날 수 있는 일이 파트타임으로라도 있으면 좋겠고, 그 일이 알리의 접근성 연구소와 관련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느슨한 연대를 위해서라도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싶었다.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에 나에게 해 준 고마운 조언들이 오히려 나를 흔들어 놓고 있다는 건, 나의 뿌리가 아직은 튼튼하지 못함을 방증한다.
알리의 접근성 연구소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가? 내가 소셜 미디어로 조회수를 먹기 위해 일하는가? 아니다. 어차피 퇴사를 결심한 그 순간부터 고정 수입이 없을 걸 알았고, 가능한 범위 안에서 지출을 줄이며 살아보기로 결심한 터다. 나는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내 시간을 구입했다. 접근성이라는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그래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가 쌓은 지식과 정보가 도움이 되게 만들고 싶으니까.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인스턴트 정보’가 아닌, ‘나만의 시간으로 묵히고 발효한’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싶으니까.
그래, 바로 그거다. 나는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으려고 퇴사한 게 아니다. 물이 안 들어오면 노를 저을 수 없고, 도리어 홍수가 나거나 급류를 만나면 내 속도에 맞지 않게 무리를 하게 된다. 이런 외부 요인에 기껏 노력하여 결심하고 퇴사한 내 귀한 시간을 맡기고 싶지는 않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처음에는 비록 주목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식과 정보가 쌓이고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연결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리고 접근성 나침반이라는 이름으로 접근성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게 된다면 사람들이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는 양질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흔하디 흔한 블로그 시스템이 아닌, 지식 그래프를 지원하는 Quartz로 웹 사이트를 구축한 것이고.
지금부터 나는 자갈을 깔고 침목을 놓고 레일을 연결하여 선로를 놓는다. 하루이틀만에 만들어진 선로 위의 기차는 결코 멀리까지 달릴 수 없을 것이다. 제대로된 방향으로 나에게 주어진 분렁만큼 꾸준히 선로를 깔고 궤도를 완성하다 보면 기술의 장벽에 부딪힌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탄탄한 노선을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 내가 정한 분량의 문서를 정리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며 나만의 데이터베이스를 탄탄하게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현실이라는 정글 속에서 내가 버티며 생존할 수 있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2026년 3월 1일, 알리의 접근성 연구소의 첫 걸음을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