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여름 날씨는 변화의 폭이 큽니다. 아침저녁으로는 그래도 선선하지만 낮이 되면 뙤약볕이 우리를 후끈 달구다가 불현듯 소나기가 오기도 합니다. 이번 주에도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와 접근성은 날씨만큼 변덕스럽습니다.

지난 접근성 브리핑 제15호에서는 선거의 기본 원칙을 따라 시각장애인의 투표 접근성을 살펴보았습니다. 투표권은 있었고, 제도도 있었고, 보조용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필요한 순간에 그 제도가 제대로 닿지 않으면 권리는 멈추었습니다.

이번 주에 다시 읽게 된 소식들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어집니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접근 경로가 누군가에게는 생활 전체를 떠받치는 버팀목이 됩니다. 그 버팀목은 여전히 튼튼하지 않고 자주 흔들립니다. 접근성은 단순히 “접근 가능하다”는 말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순간,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닿아야’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 접근성 브리핑 제16호에서는 비행기 좌석에서, 점자블록 위에서, AI 접근성 기술 앞에서 이 질문을 생활의 장면으로 옮겨 봅니다.

권리는 이미 있다고 말하지만, 그 권리를 쓰려는 순간 우리는 왜 다시 증명하고, 기다리고, 설계 바깥에 서야 하는가?

이 질문과 함께 이번 호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제16호 - 2026년 6월 16일(화)

브리핑 1. 비행기에서 보조기기를 빼앗기면 — 항공 접근성의 출발 전 공백

장애인이 비행기를 탄다는 말은 단순히 항공권을 사는 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공항에 도착하고, 보안검색을 지나고, 탑승구에서 기다리고, 좌석에 앉고, 안전벨트를 매고, 목적지에서 내리는 모든 절차가 이어져야 합니다. 그중 하나라도 끊기면 여행은 시작되기도 전에 멈추어 버립니다.

이번 주 장애계가 문제 삼은 항공기 장애아동 보조기기 사용 거부 사건은 이 점을 아주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보도에 따르면 중증 뇌병변 장애아동은 목과 허리를 스스로 지탱하기 어려워 항공기 좌석에 앉고 안전벨트를 착용하려면 착석 보조기기나 보조시트가 꼭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항공사는 기내 사용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조시트 사용을 제한했고 아이는 비행 내내 보호자 품에 안겨 이동해야 했다고 합니다. 가족이 별도 좌석을 구매하고 사전에 사진을 보내 사용 가능하다는 답변까지 받았다는 주장도 함께 보도되었습니다.1

장애인이 사용하는 보조기기는 편의용품이 아닙니다. 좌석에 앉기 위한 장비이고, 안전벨트를 제대로 매기 위한 조건이며, 몸을 지탱하기 위한 필수 장치입니다. 항공사가 안전을 이유로 보조기기 사용을 제한할 수는 있지만 그 안전이 장애아동에게 필요한 대체 장비와 절차를 마련하는 방향이 아니라 보호자 품에 안겨 비행하게 만드는 방식이라면 질문은 달라집니다. 항공사가 주장하는 ‘그 안전’은 누구의 안전입니까?

발달장애인 승객을 둘러싼 논란도 이어졌습니다. 비마이너 보도에 따르면 장애인단체들은 에어부산 기장이 발달장애인 승객에게 탑승 후 도전행동이 있으면 내리거나 회항할 수 있다는 취지의 안내와 서약서 작성을 요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에어부산은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아니라 안전 운항을 위한 설명이었다며 서약서 강요는 없었다는 입장을 냈습니다.2 양쪽의 설명이 엇갈리는 만큼 사실관계는 조심스럽게 보아야 합니다. 다만 이 논란이 던지는 질문은 남습니다. 장애 특성에서 비롯될 수 있는 불안과 행동은 지원과 조정의 대상입니까, 아니면 탑승 제한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위험 신호입니까?

항공 접근성 문제는 이번에 처음 나온 이야기도 아닙니다. 휠체어 이용 승객이 사전에 지원을 요청했는데도 탑승교나 리프트카가 준비되지 않아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는 보도, 척추 보조기기 사용을 둘러싼 탑승 거부 논란, 와상장애인에게 높은 운임 부담이 안내됐다는 사례가 이어져 왔습니다.3 사건마다 항공사와 공항, 안전규정, 운항절차가 얽혀 있습니다. 그래서 항공 접근성은 현장 직원의 선의나 순간적인 판단에 맡겨 둘 수 없습니다. 기준과 교육, 책임 구조가 함께 필요합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이동과 교통수단 이용에서 장애인을 제한·배제·분리·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도 교통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교통수단과 여객시설의 이동편의를 높이는 데 목적을 둡니다. 해외 기준을 보더라도 미국 교통부는 장애 항공승객의 권리장전에서 존엄과 존중, 차별받지 않을 권리, 지원받을 권리, 보조기기 관련 권리를 함께 설명합니다.4

비행기는 이제 특별한 사람만 타는 교통수단이 아닙니다. 누구나 필요하다면 공부하러, 일하러, 치료받으러, 여행하러, 가족을 만나러 갈 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입니다. 그렇다면 장애인도 “항공사와 승무원이 ‘챙겨주면’ 이용할 수 있는 승객”이 아니라 처음부터 항공교통의 이용자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보조기기 사용을 거부당하지 않고, 위험한 사람으로 먼저 치부되지 않으며, 필요한 지원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더 많은 설명을 떠안지 않아도 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브리핑 2. 점자블록 위에 세워진 편리함 — 공유 킥보드와 보행 접근성

이번에는 길 위로 내려와 보겠습니다. 신분당선 상현역 1번 출구 앞에 공유 전동킥보드와 공유 자전거가 무질서하게 방치되어 보행로와 점자블록을 막았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사진에는 지하철역 출입구 주변에 수십 대의 기기가 놓여 있었고, 그중 일부는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록까지 침범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5

공유 킥보드는 “짧은 거리를 편하게 이동하는 수단”으로 소개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지하철역에서 목적지까지의 마지막 거리를 이어 주는 도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점자블록 위에 세워지는 순간, 다른 누군가의 길은 막힙니다.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블록은 길을 알려 주는 선이고, 위험한 방향을 피하게 하는 단서입니다. 그 위에 킥보드가 놓이면 단순히 보기 흉한 주차가 아니라 충돌과 낙상을 부르는 위험물이 됩니다.

이미 제도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서울시는 공유 전동킥보드 견인 제도를 시행하면서 점자블록 위, 교통약자 엘리베이터 진입로, 지하철역 출구 이동을 방해하는 구역, 버스정류소와 택시승강장 주변, 횡단보도 진입로 등을 즉시 견인 대상 구역으로 정리했습니다. 견인된 기기에는 견인료와 보관료를 부과하는 방식도 마련했습니다.6 2024년에는 교통약자법 개정으로 점자블록 이용을 방해하는 행위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7

그런데도 길은 계속 막힙니다. 법이 있고 견인 기준이 있어도 실제 보행로 위에서는 방치된 기기가 먼저 놓입니다. 이 문제를 이용자 개인의 무질서로만 돌리기도 어렵습니다. 반납 금지 구역을 어떻게 설정하는지, 앱에서 주차 가능 구역을 어떻게 안내하는지, 업체가 얼마나 빨리 수거하는지, 지자체가 민원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도시가 공유 모빌리티 주차 공간을 어디에 마련하는지가 모두 연결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킥보드를 없애자”는 말 하나로 끝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이동수단이 도시 안으로 들어올 때 그 이동수단이 누구의 길 위에 놓이는지를 묻는 일입니다. 보행로는 남는 공간이 아닙니다. 점자블록은 빈 줄이 아닙니다. 교통약자 엘리베이터 앞은 잠깐 세워 둬도 되는 회색지대가 아닙니다.

공유 모빌리티가 도시의 편리함이 되려면, 그 편리함이 가장 먼저 교통약자의 길을 침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기술과 서비스가 빠르게 들어오는 도시일수록 누가 편해졌고 누가 돌아가야 했는지, 누가 더 빨리 이동했고 누가 점자블록 앞에서 멈추었는지를 끊임없이 되뇌이고 물어야 합니다.


브리핑 3. AI는 벽이 아니라 문일지도 — 접근권으로 읽는 인공지능

AI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더 빨리 쓰고, 더 많이 요약하고, 더 쉽게 검색하는 도구를 떠올리며 자주 효율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AI는 조금 다른 자리에서 시작될 때가 있습니다. TechPolicy.Press에 실린 한 장애인권 변호사의 글은 이 차이를 잘 보여 줍니다. 뇌성마비가 있고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저자는 법학전문대학원 시절 두껍고 무거운 법학 서적을 넘기는 일이 장벽이었다고 말합니다. 온라인 법률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이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자신의 지식과 역량으로 공부할 수 있게 한 조건이었습니다.8

이 경험에서 AI를 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AI는 그저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부가 기능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읽을 수 없던 이미지를 이해하고, 복잡한 문서를 확인하고, 손으로 조작하기 어려운 화면을 음성으로 다루고, 정보를 비교할 수 있게 하는 접근 경로가 됩니다. 여기서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AI가 사람을 도와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원래 환경이 막고 있던 장벽을 어떤 방식으로 낮출 수 있느냐입니다.

시각장애인의 온라인 쇼핑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쇼핑은 상품명을 읽는 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제품 사진을 확인하고, 색상과 크기를 고르고, 옵션 조합을 확인하고, 리뷰를 비교하고, 배송비와 쿠폰을 따지고, 결제 오류 없이 마지막 화면까지 가야 합니다. 상세페이지가 이미지로만 되어 있거나, 옵션 선택 상태가 화면 읽기 프로그램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리뷰 사진과 별점 정보가 구조화되어 있지 않으면 소비자는 “살 수는 있지만 고르기는 어려운” 상태에 빠집니다.

서울대 학생 창업팀 시공간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AI 쇼핑앱 ‘픽포미’ 4.0을 출시했다는 보도는 이 지점을 보여 주는 하나의 사례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새 버전은 채팅형 AI 질문, 상품 탐색과 필터, 저시력 사용자를 위한 이미지 썸네일, iOS 로터와 핀치 제스처 지원 등을 포함합니다.9 온라인 쇼핑에서 시각장애인이 무엇을 직접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새로운 ‘픽포미’가 어쩌면 좀 더 나은 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AI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습니다. AI는 틀릴 수 있고, 그럴듯하게 잘못 설명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시각장애 사용자는 AI가 설명한 이미지나 상품 정보를 직접 확인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색상, 수량, 가격, 유통기한, 성분, 안전 경고가 잘못 설명되면 오류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실제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AI 접근성의 위험은 AI가 틀린다는 사실보다, 사용자가 그 오류를 검증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Apple의 AI 기반 접근성 기능은 이미 접근성 브리핑 제13호에서 자세히 살펴본 것처럼 운영체제가 이미지를 더 잘 설명하고, 음성 명령이 더 자연스러워지고, 자동 자막이 더 넓어지더라도, 제품이나 서비스 제작자가 접근 가능한 웹과 앱을 만들어야 할 책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10

그래서 AI는 어떤 사람에게 접근권을 실현하는 통로가 될 수는 있지만 AI가 접근성 의무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좋은 AI 접근성은 사용자 대신 무엇인가를 골라주는 기술이 아니라, 사용자가 더 많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어야 합니다. 쇼핑몰은 여전히 접근 가능해야 하고, 앱은 여전히 제대로 이름 붙은 버튼과 구조를 가져야 하며, AI는 그 위에서 사용자의 선택권을 넓혀야 합니다.


브리핑 4. 정보는 문자와 음성만으로 충분한가 — 수어와 점자, 다른 접근 경로의 자리

정보 접근성을 말할 때 우리는 문자와 음성을 먼저 떠올립니다. 화면 읽기 프로그램이 읽을 수 있는 텍스트, 자막이 붙은 영상, 음성 안내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쓰는 농인에게 문자 안내는 언제나 같은 깊이의 정보가 아닐 수 있으며, 시각장애인에게 음성 설명은 도움이 되지만 읽고 쓰는 문해 경험 전체를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케이엘큐브가 AI 수어 아바타 플랫폼과 실시간 AI 수어 변환 서비스를 공공·금융·의료·교통·전시 분야로 확대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카카오뱅크, 코레일, 서울의료원, 코엑스 같은 적용 사례도 언급됐습니다.11 이 흐름은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공공기관과 민간 서비스가 청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수어로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AI 수어를 평가할 때는 먼저 출발점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한국수어는 한국어 문장을 손동작으로 바꾼 것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한국수어가 손의 모양, 위치, 움직임, 방향, 표정 등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보이는 언어”라고 설명합니다. 한국수화언어법도 한국수어를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로 봅니다.12 그러니 AI 수어 앞에서 물어야 할 것은 “수어 영상이 있느냐”가 아니라 “한국수어의 문법과 비수지 신호, 문맥과 문화가 제대로 담겼느냐”에 가깝습니다.

세계농아인연맹과 세계수어통역사협회는 이미 수어 아바타가 인간 수어통역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특히 뉴스, 법률, 의료, 재난, 정치처럼 실시간성과 책임이 큰 정보에서는 정확성, 맥락, 문화적 적합성, 농인 당사자 검수가 중요합니다.13 AI 수어가 반복 안내나 정적 콘텐츠에서 접근 경로를 넓힐 수는 있어도 사람 중심의 통역과 상담 접근성을 줄이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수어처럼 보이는 영상’과 수어로 이해되는 정보는 같은 말이 아닙니다.

점자교육 기술 앞에서도 질문은 비슷합니다. 크레아큐브가 독일 SightCity 2026에서 스마트 점자큐브를 선보였고, RNIB, ONCE, Statped 등 유럽 시각장애 지원·교육 기관과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는 보도도 눈에 띕니다.14 저 알리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점자를 어떻게 배우게 할 것인가입니다.

점자는 음성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서 사라지는 보조수단이 아닙니다. 점자는 촉각으로 읽고 쓰는 문자이고, 철자와 문장부호, 단어 구조와 문장 구조를 직접 익히는 문해 체계입니다. RNIB는 점자가 시각장애 아동의 철자, 문법, 문장부호 이해와 독립적 읽기·쓰기에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APH도 촉각 문해력이 점자뿐 아니라 지도, 그래프, 기하 같은 촉각 자료 이해의 기초가 된다고 봅니다.15

그래서 다감각 점자교육은 “재미있는 점자 장난감”의 문제가 아닙니다. 촉각 탐색, 손가락 움직임, 공간 개념, 청각 피드백, 놀이와 반복 경험이 점자문해력으로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ONCE의 BRAITICO처럼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점자 읽기·쓰기와 촉각 자료, ICT를 단계적으로 결합하려는 교육 모델도 있습니다.16

AI 수어와 스마트 점자교육 도구는 반가운 가능성입니다. 하지만 이 가능성을 기업 성과로만 읽지 않으려면 누가 검수했는가, 어떤 언어와 문해 개념을 바탕으로 설계했는가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접근성 기술은 감동적인 시연보다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야기될 문제점과 그에 대한 책임을 견뎌내야 합니다.


브리핑 5. 당사자 없이 설계된 기술의 위험 — AI 시대 접근성 거버넌스

마지막으로 다시 AI로 돌아오겠습니다. 이번 호에서 AI 이야기가 여러 번 나왔지만, 이번에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제작자 관점’에서 논의하고 싶습니다. 누가 데이터를 만들고, 누가 위험을 정하고, 누가 제품을 검증하고, 누가 오류의 피해를 먼저 겪는가를 묻고 싶은 것입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의, COSP19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더인디고 보도에 따르면 CRPD 채택 20주년을 맞아 열린 부대행사에서 참석자들은 AI와 디지털 전환이 장애인의 교육, 노동, 자립생활을 넓힐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장애인이 배제된 채 개발되면 기존 차별을 대규모로 재생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거버넌스와 참여라는 말도 나왔습니다.17

이 말은 조금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앞서 살펴본 내용을 떠올려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항공사는 안전을 말하지만 장애아동의 보조기기가 안전하게 쓰일 절차를 충분히 마련했는지 물어야 합니다. 공유 킥보드 서비스는 편리한 이동을 말하지만 점자블록과 엘리베이터 진입로를 어떻게 보호할지 설계해야 합니다. AI 쇼핑앱과 수어 아바타, 점자교육 도구는 가능성을 말하지만 당사자 검수와 오류 책임, 적용 범위를 함께 밝혀야 합니다. 거버넌스는 회의장 안의 단어가 아니라 생활 속 제품과 제도에 책임을 남기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접근성 표준 이야기도 회의장 밖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UXmatters의 글은 접근성이 마지막에 돌리는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제품이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설계 조건이라고 설명합니다. WCAG, ADA, Section 508, 유럽 접근성 법제 같은 기준이 서로 다른 법·제도 안에 있어도 결국 묻는 것은 비슷합니다. 사용자가 메뉴를 찾고, 폼을 작성하고, 오류를 이해하고, 키보드나 보조공학기술로 서비스를 끝까지 이용할 수 있는가입니다.18 ‘웹 접근성 평가 인증에 통과했다’고 끝나는 일도 아닙니다.

기술 커뮤니티 안으로 장애 당사자와 보조공학기술 사용자가 들어가는 흐름도 그냥 행사 지원으로만 볼 일은 아닙니다. Equersa Accessibility Fellowship 2026은 장애가 있거나 보조공학기술을 사용하는 연구소프트웨어공학 커뮤니티 구성원이 지역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접근성 경험을 기록하고, 행사 요약에 반영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19 작은 사례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방향이 있습니다. 접근성은 “나중에 의견을 듣는 일”이 아니라, 설계와 기록과 평가의 자리에 당사자가 언제나 함께 있는 일이어야 합니다.

미국에서는 디지털 접근성 규정의 이행 기한을 미룬 조치에 대해 미국 시각장애인연맹, NFB가 소송을 제기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이 사안은 접근성 브리핑 제9호에서 다룬 ADA Title II 기한 연장 논의와 이어집니다. 제가 보는 핵심은 연장 자체보다, “더 기다리라”는 말이 장애인에게 어떤 의미인지입니다.20 공공서비스와 의료, 교육, 복지, 투표와 같은 영역에서 디지털 접근성은 편의가 아닙니다.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는 계속 신청하지 못하고, 읽지 못하고, 예약하지 못하고, 참여하지 못합니다.

AI 시대의 접근성은 더 멋진 기능을 발표하는 경쟁만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기술이 장애인의 권리를 넓히려면 당사자가 설계와 평가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데이터는 장애를 결함으로만 재현하지 않아야 하고, 공공조달과 서비스 계약에는 접근성 기준이 들어가야 하며, 오류와 피해에 대한 책임도 분명해야 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기술”이라는 말은 쉽습니다. 어려운 것은 장애인 없이 그 기술을 설계하지 않는 일입니다.


마치며

어쩌면 저를 포함한 장애인 당사자들이 마주하는 ‘마음의 날씨’도 여름 날씨만큼 변덕스러울지 모르겠습니다. 한쪽에서는 서늘한 바람처럼 접근성과 권리가 단단해지며 우리를 흐뭇하게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우리 자신을 증명해야 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결국 장애를 느껴야 하는 폭풍우 같은 상황을 마주하기도 합니다.

이번 호의 소식들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결국 한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접근성은 필요한 순간에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가?

권리는 먼저 문서에 기록됩니다. 법에도 쓰이고, 정책에도 쓰이고, 기업 발표에도 쓰입니다. 그러나 권리가 사람에게 닿으려면 그다음이 필요합니다. 보조기기 사용을 거부당하지 않고 좌석에 앉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점자블록을 따라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화면 속 상품을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어로 정보를 만나고, 점자로 읽고 쓰는 경험을 쌓을 수 있어야 합니다. AI와 접근성 기술도 그 길을 넓히는 문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기술을 이야기할 때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기술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말입니다. 기술은 장벽을 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이 누구에게 열리는지, 문턱은 얼마나 높은지, 열쇠는 누가 쥐고 있는지, 문이 닫혔을 때 누구에게 말할 수 있는지를 함께 묻지 않는다면 접근성은 다시 장벽에 나붙은 홍보 문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접근성은 결국 설계의 문제이고 책임의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당사자가 그 설계 안에 있어야 한다는 약속입니다.

다음 주에도 그 약속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 저 알리는 계속 따라가 보겠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Footnotes

  1. 보도에 따르면 장애아동 가족은 항공기 좌석에서 아이의 몸을 지탱하기 위해 보조시트가 필요하다고 설명했고, 장애인단체는 보조기기 사용 제한을 장애아동의 안전한 이동권 침해로 보았습니다. 기사에는 항공사명이 익명 처리된 부분이 있으므로 본문에서는 특정 항공사명을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 에이블뉴스, 「항공기 장애아동 보조기기 사용 거부, 아빠 품에 안겨 끔찍한 비행 “참담”」(2026.6.11.), 비마이너, 「항공사에서 장애아동 보조시트 못 쓰게 해…대체 왜?」(2026.6.11.)

  2. 에어부산 논란은 장애인단체의 주장과 항공사 입장이 엇갈리는 사안입니다. 단체는 발달장애인 승객에게 도전행동 시 탑승 제한이나 회항 가능성을 언급하며 서약을 요구했다고 주장했고, 항공사는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이 아니라 안전 운항을 위한 설명이었다는 취지로 반박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사실 확정 표현보다 “논란”과 “주장”으로 범위를 좁혔습니다. | 비마이너, 「“도전행동 시 탑승 제한 서약서 요구받아”…장애인단체, 에어부산 규탄」(2026.6.12.)

  3. 항공교통 접근성 문제는 보조시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비마이너는 휠체어 이용 승객이 사전 요청에도 불구하고 탑승교나 리프트카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티웨이항공 관련 보도를 냈고, 경향신문은 와상장애인에게 높은 운임 부담이 안내된 사례를 보도한 바 있습니다. | 비마이너, 「티웨이항공, 6개월도 안 돼 또다시 장애인 차별」(2026.5.12.), 경향신문, 「와상장애인에겐 6배 비싼 항공권···“장애인 비행기 이동권 보장하라”」(2024.8.9.)

  4. 미국 교통부의 장애 항공승객 권리장전은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존엄과 존중을 받을 권리, 지원받을 권리, 보조기기 관련 권리 등을 정리합니다. 미국 항공접근법 시행규정인 14 CFR Part 382는 장애를 이유로 한 항공여행 차별 금지를 다루며, IATA도 장애 승객의 항공여행이 안전하고 존엄하며 장벽 없는 경험이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국내 법제와 직접 같지는 않지만 항공 접근성을 “특별 배려”가 아니라 교통 이용 권리와 안전 절차의 문제로 보는 참고 기준이 됩니다. | U.S. DOT, 「Airline Passengers with Disabilities Bill of Rights」, eCFR, 「14 CFR Part 382」, IATA, 「Air Travel Accessibility」

  5. 기사 속 사례는 신분당선 상현역 1번 출구 앞의 공유 킥보드·자전거 방치 문제를 다룹니다. 한 장소의 사례이지만, 지하철역 출입구와 점자블록, 보행로를 공유 모빌리티가 침범하는 문제는 여러 도시에서 반복되는 보행 접근성 문제로 읽을 수 있습니다. | 네이트 뉴스/시대, 「“점자블록까지 점령”…지하철역 점령한 공유 킥보드 무질서 주차」(2026.6.14.)

  6. 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불법 주정차 공유 전동킥보드 견인 제도를 시행하면서 차도, 지하철역 출구 이동 방해 구역, 버스정류소·택시승강장 10m 이내, 점자블록 위와 교통약자 엘리베이터 진입로, 횡단보도 진입로를 즉시 견인구역으로 정리했습니다. 자료는 2021년 시행 안내이므로, 현재 세부 운영 방식은 지자체별로 다를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서울시, 15일부터 전국 최초로 불법 주정차한 공유 전동킥보드 견인」

  7. 연합뉴스는 2024년 9월 15일부터 점자블록 이용을 전동킥보드·자전거·적치물 등으로 방해하는 행위에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는 점자블록 방해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법적 제재 대상이 되는 이동권 침해 행위로 다뤄지기 시작했음을 보여 줍니다. | 연합뉴스, 「장애인용 ‘점자블록’ 이용 방해하면 과태료 부과한다」(2024.9.13.), 국가법령정보센터,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8. Shawn Murinko는 TechPolicy.Press 기고문에서 AI를 단순한 생산성 도구가 아니라 장애인의 교육·노동·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접근 수단으로 설명합니다. 이 글은 AI의 위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장애인에게 AI가 “사치”가 아니라 접근과 자율성을 여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합니다. | TechPolicy.Press, 「How AI Gave Me Access—and Why It Must Give Others the Same」(2026.6.5.)

  9. 픽포미 4.0 보도는 채팅형 AI 질문, 상품 탐색과 필터, 저시력 사용자를 위한 이미지 썸네일, 핀치 제스처와 iOS 로터 지원 등을 소개합니다. 기사 자체는 제품 출시 보도이므로 본문에서는 특정 앱의 품질을 보증하기보다, 온라인 쇼핑에서 시각장애인이 겪는 이미지·옵션·리뷰·결제 접근성 장벽을 설명하는 사례로만 활용했습니다. | 스타트업엔, 「서울대 창업팀 ‘시공간’, 시각장애인 AI 쇼핑앱 ‘픽포미 4.0’ 출시… 접근성 대폭 강화」(2026.6.10.)

  10. Apple Intelligence를 활용한 VoiceOver, Magnifier, Voice Control 등 접근성 기능은 접근성 브리핑 제13호에서 자세히 다뤘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그 내용을 반복하기보다, AI 접근성 기능이 접근 가능한 콘텐츠·앱 설계의 책임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연결점만 남겼습니다. Apple도 공식 발표에서 일부 AI 기반 설명 기능을 고위험 상황, 내비게이션, 의료적 판단 등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밝힙니다. | Apple, 「Apple unveils new accessibility features, and updates with Apple Intelligence」(2026.5.19.), 접근성 브리핑 제13호

  11. 케이엘큐브 보도는 AI 수어 아바타 플랫폼과 실시간 AI 수어 변환 서비스가 공공·금융·의료·교통·전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본문에서는 이 보도를 AI 수어 기술의 품질을 보증하는 근거로 쓰지 않고, 수어 접근성 기술을 평가할 때 필요한 질문을 드러내는 사례로 사용했습니다. | 메가경제, 「케이엘큐브, AI 수어 서비스 확산 본격화…공공·민간 적용 확대」(2026.6.12.)

  12. 국립국어원은 수어를 손의 모양, 방향, 위치, 움직임과 표정 등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보이는 언어”로 설명합니다.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힙니다. 따라서 AI 수어는 한국어 문장을 손동작으로 치환하는 기술이 아니라, 독립 언어인 한국수어의 문법과 문화, 비수지 신호를 얼마나 책임 있게 구현하는지로 보아야 합니다. | 국립국어원, 「수어 소개」, 국가법령정보센터, 「한국수화언어법」

  13. WFD와 WASLI는 수어 아바타가 인간 수어통역을 대체해서는 안 되며, 특히 복잡하고 실시간성이 높은 정보에서는 문맥, 문화, 비수지 신호, 책임 있는 검수가 중요하다고 경고합니다. 최근 수어 AI 연구에 대한 농인 연구자 중심의 비판도 농인 당사자 참여 부족, 데이터와 평가 기준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 WFD, 「WFD and WASLI Statement on Use of Signing Avatars」, Desai et al., 「Systemic Biases in Sign Language AI Research: A Deaf-Led Call to Reevaluate Research Agendas」

  14. 크레아큐브 보도는 스마트 점자큐브가 독일 SightCity 2026에서 소개되었고, RNIB, ONCE, Statped 등과 협력 가능성을 논의했다고 전합니다. 다만 각 기관의 공식 검증 결과나 협약 자료가 기사만으로 모두 확인되는 것은 아니므로, 본문에서는 제품 효과를 단정하지 않고 다감각 점자교육의 의미를 설명하는 사례로 활용했습니다. | 공감신문, 「크레아큐브, 독일 ‘SightCity 2026’ 참가… 글로벌 시각장애인 교육 시장 공략」

  15. RNIB는 점자가 시각장애인의 철자, 문법, 문장부호 이해와 독립적 읽기·쓰기에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APH는 촉각 문해력을 점자뿐 아니라 지도, 그래프, 도형 같은 촉각 자료 이해의 기초로 봅니다. 음성 기술이 발전해도 점자는 문해력과 학습 접근성의 중요한 축으로 남습니다. | RNIB, 「Why is braille important?」, APH, 「Building Your Tactile Literacy Toolkit」

  16. ONCE의 BRAITICO는 0세부터 12~13세까지의 점자문해력 발달을 단계적으로 다루며, 조작 자료, 인쇄 자료, ICT를 결합하는 포괄적 점자교육 방법으로 소개됩니다. 이는 점자교육이 단일 기기나 단일 교재의 문제가 아니라 촉각 탐색과 읽기·쓰기 경험을 누적하는 교육 설계의 문제임을 보여 줍니다. | ONCE Educación Inclusiva, 「BRAITICO」

  17. COSP19는 2026년 6월 9일부터 11일까지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19차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의입니다. EDF는 이번 회의의 큰 주제를 “CRPD at 20: celebrating and consolidating achievements and shaping the next phase of implementation in a changing world”로 소개합니다. 더인디고는 RI Korea 주최 부대행사에서 AI와 디지털 전환이 장애인의 권리 실현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장애인이 배제된 설계는 기존 차별을 증폭할 수 있다는 논의가 나왔다고 보도했습니다. | European Disability Forum, 「19th Conference of State Parties to the UN CRPD」, 더인디고, 「[COSP19] ③ 유엔서 던진 질문… AI는 새 권리인가, 새 장벽인가」

  18. UXmatters 글은 접근성을 마지막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제품 설계 전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로 설명합니다. 글은 WCAG, ADA, Section 508, Web Accessibility Directive, European Accessibility Act 등을 언급하며, 사용자가 폼을 작성하고 메뉴를 이동하고 오류를 이해하고 콘텐츠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실무 기준을 정리합니다. | UXmatters, 「Implementing Accessibility Standards in Digital Product Design to Improve Inclusive User Experiences」(2026.6.15.), W3C WAI, 「WCAG Overview」

  19. Equersa Accessibility Fellowship 2026은 장애가 있거나 보조기술을 사용하는 연구소프트웨어공학 커뮤니티 구성원이 아시아·호주/뉴질랜드,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지역 온라인 컨퍼런스에 참여하고 접근성 경험을 기록하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이 사례는 접근성이 “참석자를 위한 편의 제공”에서 “기술 커뮤니티 안의 참여와 기록”으로 넓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 Opportunities for Youth, 「Equersa Accessibility Fellowship 2026」

  20. NFB는 미국 DOJ와 HHS가 웹사이트와 모바일 앱 접근성 준수 기한을 1년 미룬 조치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사안은 접근성 브리핑 제9호에서 다룬 ADA Title II 디지털 접근성 기한 연장과 이어지는 후속 국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규정의 존재가 아니라, 접근성 이행을 미루는 시간이 장애인에게는 공공서비스·의료·교육·복지 접근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 Disability Scoop, 「Trump Administration Sued Over Delay Of Accessibility Rules」(2026.6.8.), Democracy Forward, 「National Federation of the Blind Sues Trump-Vance Administration Over Delays to Critical Website Accessibility Protections」, 접근성 브리핑 제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