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입구에 숨겨진 큰 공간
지난 브리핑 1호에서 소개해 드린 오토핀 사운드 길드의 정모(정기 모임)이 지난 3월 28일 토요일, 종로인명장애인자립생활센터 명륜 교육장에서 열렸습니다. 알리가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당신의 말 한마디와 작은 손길이 시각장애인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 종로인명장애인자립생활센터
혜화역 4번출구에서 따스한 봄볕을 맞으며 성균관로를 15분 정도 산책하면 발견할 수 있는 교육장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어마어마한 공간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통해있는 공간과 사무실을 구경하다가 한 켠에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를 발견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면 ‘소리마을’이라는 표지판이 붙은 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문을 여니 별천지가 펼쳐집니다.

가운데 드럼을 중심으로 두 대의 키보드와 모니터 스피커, 천정에는 에어컨, 그리고 맞은 편에는 기타와 베에스 앰프, 믹서 등이 갖추어진 밴드 연습실이 나오네요. 사방은 방음 처리가 되어 있어서 외부 방해 없이 밴드 연습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군요.
오토핀 사운드 정모

아, 얘기가 살짝 딴 데로 셌는데요, 다시 올라와 보니 ‘오토핀’ 님을 위시해서 멘탈 님, 힐링 님, 파전 님—원래 파멸의 전략가인데 줄여서 부른답니다ㅋ—, 언덕위의 딸기 님, 타임리스 님, 에밀리 님 등 짱짱한 길드원들이 모여계셨습니다. 그리고 종로인명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장용전 국장님(장스타 님)과 원희승 님(부추전 님)이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이날에는 게임 접근성 향상을 위해서 애쓰고 계시는 게임 제작사인 ‘스마일게이트’에서 최한나 팀장님(헤나 님)과 서동현 대리님(리오 님)도 함께 참석해 주셨습니다.1 게임 접근성에 대해서 게임 제작사와 실제 당사자가 함께 모여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아직은 흔치 않은 만큼 풍성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함께 나눈 이야기들
당사자가 먼저 길을 만든다
오토핀 님은 디아블로4의 접근성 기능이 원래 저시력 사용자를 위해 설계된 것임에도 이를 응용해 전맹 플레이어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냈습니다. 당사자가 직접 접근성 관련 모드를 만들고 방법을 개척하는 흐름이 해외에서도 이미 활발한데, 엑스박스의 경우 전맹 시각장애인이 개발 단계부터 접근성 피드백에 직접 참여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테라리아, 하데스 등 인디 게임에서 접근성 지원이 오히려 더 적극적인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개발자의 의식과 당사자의 목소리가 만날 때 변화가 생깁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게임 접근성 개선을 가로막는 벽 중 하나는 개발사 내부에서 “시각장애인 게이머가 얼마나 되느냐”는 의문입니다. 게임 엔진(유니티 등) 수준에서는 외부 모딩을 통한 접근성 구현이 가능하지만 자체 엔진을 사용하는 경우는 접근성 지원이 상대적으로 어렵고, AI로 작성하는 코드도 개발자가 접근성 개념을 명확히 알고 프롬프트에 녹여 넣어야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옵니다.2 결국 접근성 의식의 수준이 핵심입니다. 당사자가 불편함을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정말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책은 여전히 현장을 따라오지 못한다
접근성 브리핑 제4호에서 소개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도 이야깃거리가 됐습니다. 정책적 노력이 있었음에도 담당자가 자주 바뀌고, 게임 내 접근성뿐 아니라 게임 서비스 전반의 접근성(계정 가입, 결제, 고객센터 등)은 정책 논의에서 여전히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게임은 사회복지나 공공 서비스와 달리 ‘사용성’의 관점에서 접근성으로 확장하는 방향이 오히려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지지자와 당사자가 함께할 때 시너지가 생긴다
미국의 경우 게임 접근성을 전문으로 다루는 NGO가3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국내에서도 이슈가 생길 때마다 자문을 줄 수 있는 전문가 그룹과 당사자 그룹이 함께 움직이는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모임이 마무리됐습니다. 연말정산간소화 서비스처럼 이미 접근성이 확보된 서비스들이 널리 알려져야 시각장애인들이 더 많은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다는 말도 오래 남았습니다.
마치며
약 세 시간 동안 회원들은 허심탄회하게 게임과 접근성이라는 주제를 두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변화의 작은 씨앗을 심은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알리의 접근성 연구소가 바로 ‘자문을 줄 수 있는 전문가 그룹과 당사자 그룹이 함께 연대하는 생태계’를 만드는 초석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 날입니다.

이제 인터넷에 연결된 게임기에 스마트폰을 통해 원격으로 접속한 다음 게임 패드로 격투게임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기술은 이미 가까이 있습니다. 이를 ‘누구나 닿을 수 있는’ 접근성 증진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 역시 우리 ‘모두’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는 적극적인 의견을 게진하고, 제조사는 제품 기획과 설계 단계에서부터 당사자와 함께 한다면 마침내 작은 변화는 큰 물꼬를 틀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시각장애 유튜버 오토핀사운드 님의 동영상 하나 보고 투척합니다~ 즐감하세요~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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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게이트’의 접근성 팀은 이미 자사 게임의 접근성을 향상할 수 있도록 노하우를 축적하고 장애 당사자 게임머를 ‘게임 접근성 테스터’로 양성하고 있습니다. | 어떤 장애도 당신의 플레이를 막을 수 없도록_스마일게이트 접근성팀 최한나 팀장-스마일게이트 뉴스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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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이클 페어차일드(Michael Fairchild)가 CSUN ATC 2026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LLM은 기본 상태에서 접근성이 낮은 코드를 생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체 모델 평균 접근성 통과율은 약 10%에 불과했는데 이는 LLM의 훈련 데이터 자체가 접근성이 미흡한 웹 코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반면 프롬프트에 ‘접근성을 준수할 것’이라는 한 줄만 추가해도 통과율이 18%p 상승했고 구체적인 접근성 지침(WCAG 기준, 시맨틱 HTML 등)을 상세히 명시할 경우 최대 48%p까지 향상되었습니다. 다만 이 효과는 모델마다 편차가 크며 일부 모델은 상세 지침을 제공해도 여전히 0점을 기록했습니다. | Embedding Accessibility into AI based software development - DEV Commun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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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적인 게임 접근성 전문 비영리단체로 AbleGamers Foundation이 있습니다. 2004년 설립된 501(c)(3) 단체로, 장애인 게이머를 위한 보조 기기 지원, 게임사 접근성 자문,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개발사 피드백에 참여하는 Player Panels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마이크로소프트 Xbox 어댑티브 컨트롤러와 소니 Access 컨트롤러 개발에도 협력했습니다. | AbleGamers Foundation | AbleGamers - Wikipedia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