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5월이 끝나고 이제 6월이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접근성 브리핑을 발행한 지도 벌써 세 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여러 소식들을 전해드렸지만 아직까지 접근성에 관한 소식은 끊임이 없습니다. 그게 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에게 전해드릴 수 있는 소식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게 좋은 소식이라면 더 기쁘겠지요.

지난 접근성 브리핑 제13호에서는 기술 기업들의 접근성 발표를 따라갔습니다. 화면을 더 자세히 설명하는 Apple Intelligence, 개발자에게도 접근성에 대한 책임을 함께 생각하게 하는 Android 접근성 기능, 그리고 삼성과 LG와 넷마블의 접근성 사례가 이어졌습니다. 그때 했던 질문은 기능 자체보다 그 기능이 누구의 손끝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였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그 질문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내 스스로 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다시 좁혀 보겠습니다.

스마트폰을 ‘많이’ 이용한다는 말은 어떤 이에게는 ‘중독’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시간이 타인과의 소통이고, 내가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는 길입니다. 때로는 그 스마트폰이 우리들의 삶에 꼭 필요한 경제 활동을 도와주고, 일상을 이어가는 일터이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는 통로일지도 모릅니다. 은행이 전자점자를 제공한다는 소식은 반갑지만, 지원금 선불카드에 점자와 쉬운 안내가 없다면 경제 활동은 여전히 남의 손을 빌려야 합니다. 보조공학기기는 일터를 넓히지만, 제도는 등급 하나로 일할 권리를 막기도 합니다.

이번 호의 질문은 그래서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삶을 살아내도록 접근성은 얼마나 우리를 도울 수 있을까요? 스마트폰, 경제 활동, 일터, 교실, 게임 화면 앞에서 차례로 이 질문의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제14호 - 2026년 6월 2일(화)

브리핑 1. 스마트폰 스크린타임 — 중독 담론 밖의 디지털 시민권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한다는 말은 과의존, 중독, 자기조절 실패 같은 평가로 이어집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매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를 조사하고, 2025년 조사에서는 전체 과의존 위험군 비율이 22.7%라고 발표합니다. 물론 스마트폰 사용이 피로와 건강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가볍게 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 과의존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다만 그 조사 결과만으로 장애인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에이블뉴스의 김경식 칼럼니스트는 장애인의 스마트폰 스크린타임을 단순 사용 시간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짚었습니다. 비장애인에게 스마트폰이 편의의 도구라면 많은 장애인에게 스마트폰은 사회와 연결되는 기반입니다. 시각장애인은 화면 읽기 프로그램으로 정보를 읽고 돋보기 앱으로 사물을 확대해서 봅니다. 청각장애인은 문자와 자막으로 소통하며, 발달장애인과 뇌병변장애인은 AAC 앱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합니다. 실제로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쓰는 보완대체의사소통(AAC) 앱은 이미 별도의 보조공학기기를 조금씩 대체하면서 일상적인 의사소통 도구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어느 순간 ‘손 안의 보조공학기기’가 되었습니다.1

장애인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에는 뉴스나 듣고, 쇼츠나 보고, 게임이나 하는 시간으로 치부할 수 없는 중요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병원을 예약하고,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재택근무를 하며, 꼭 필요한 사람과 메신저로 소통하기도 합니다. 경제 활동을 위해 다양한 금융 앱을 활용하거나, 출퇴근을 하거나 자조모임에 참여하려고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교통 정보를 검색하고, 이동 지원 서비스를 신청하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은 절박한 상황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긴급 연락을 하기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하루 몇 시간의 스마트폰 사용은 그저 시간을 흘리기 위한 행동일지 모르지만, 장애인에게는 하루를 꾸려 가는 데 꼭 필요한 일상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스마트폰을 얼마나 오래 사용하는가”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더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접근 가능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입니다. 앱에 표시되는 작은 버튼, 짧은 입력 제한 시간, 복잡한 본인인증, 화면 읽기 프로그램과 충돌하는 앱과 같은 장벽 앞에서 장애인들은 비장애인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일을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가며 애쓴 끝에 해내야만 합니다.

AI가 스마트폰 안으로 더 깊이 들어오는 지금, 이 질문은 더 중요해집니다. AI는 소위 ‘평균적인’ 말투와 몸짓, 입력 속도를 기준으로 학습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떨림 있는 손, 느린 입력, AAC를 통한 의사소통, 비표준적 발화, 낮은 시력과 다른 감각 사용 방식은 인공지능의 데이터 안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을까요? 기술이 발전할수록 소수자의 특성을 얼마나 반영하는지가 비로소 접근성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장애인의 스마트폰 스크린타임은 과몰입과 중독 담론만으로 설명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디지털 시민권의 시간일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덜 쓰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스마트폰으로 처리해야 하는 사회의 절차가 장애인을 배제하지 않게 만드는 일입니다.2


브리핑 2. 경제 활동과 행정정보 접근성 — 남에게 맡길 수 없는 정보

이번 주 금융권에서는 시각장애인 금융 접근성과 관련해 반가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KB국민은행은 개인 인터넷뱅킹 주요 메뉴와 증명서 발급 화면에 전자점자 파일 제공을 시작했고, 토스뱅크는 모바일뱅킹 통장사본에 전자점자서비스를 제공하고 향후 금융·증명 문서 전반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3

전자점자서비스의 의미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했다”에 그치지 않습니다. 금융 정보에는 숫자와 표와 복잡한 증명서가 많습니다. 계좌 잔액, 거래내역, 이체 결과, 대출증명서, 금융거래확인서 같은 정보는 귀로 대충 들으면 되는 정보가 아닙니다. 정확히 확인하고, 꼼꼼하게 다시 살피고, 필요하면 보관해야 하는 정보입니다. 음성 안내만으로는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숫자와 표와 문서의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점자 정보 단말기나 점자프린터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런데 같은 주에 정반대의 사례도 있었습니다. CBS노컷뉴스는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사용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기가 없는 선불카드,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안내 부재 문제가 있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인권위 관계자는 선불카드에 점자 표기가 없으면 잔액과 금액을 확인하기 어렵고,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안내가 없다면 신청 과정에서도 차별의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4

이 두 소식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같은 맥락을 공유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내 스스로 내 금융 자산의 정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금융기관의 계좌 정보든, 행정기관이 지급하는 지원금이든, 돈은 사람의 생활과 선택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를 받았는지, 얼마가 남았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신청하고 써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면 그 돈은 온전히 내 것이 되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접근성은 그저 ‘친절한 부가서비스’로 여기면 안 됩니다. 누군가 대신 읽어 주거나 설명해 주면 된다는 말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금융과 행정은 개인정보와 자기결정권이 함께 걸려 있는 영역입니다. 잔액을 확인하려고 다른 사람에게 카드를 맡겨야 하고, 신청 절차를 이해하려고 보호자나 담당자의 해석에 기대야 한다면, 지원은 있어도 권리는 반쪽으로 남습니다.

전자점자서비스는 좋은 방향입니다. 하지만 좋은 사례 하나가 있다고 해서 개인의 금융 정보와 행정정보 접근성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은행의 증명서, 지원금 카드, 신청 안내문, 잔액 확인 방식, 상담 창구까지 함께 연계되어야 합니다. 내 금융 자산을 내 손으로 직접 확인할 권리와 지원을 직접 신청할 권리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브리핑 3. 보조공학기기와 일자리 — 기술이 여는 가능성, 제도가 닫는 일자리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5월 28일부터 29일까지 서울 aT센터에서 제21회 대한민국 보조공학기기 박람회를 열었습니다. 이데일리는 이번 박람회에 60여 개 업체가 참가해 200여 점의 보조공학기기와 신기술을 선보였다고 전했습니다. 자동수평유지 전동휠체어, 시각장애인 안내 로봇, AI 기반 점자정보단말기, 로봇·웨어러블 기술 등이 소개됐습니다.5

YTN 보도는 이 기술을 실제 일터의 장면과 연결했습니다. 시각장애인 공무원이 보조공학기기의 도움으로 도서관 사서 역할을 수행하고, 자막안경과 전동휠체어와 안내 로봇 같은 기기가 근로 장애인의 직장 생활을 돕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장애인고용공단은 근로 장애인을 대상으로 보조공학기기 구입 비용을 지원하고 있고, 지난해 기준 지원을 받아 보조공학기기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8천 명이 넘는다고 설명했습니다.6

이 소식은 분명 반갑습니다. 하지만 보조공학기기는 장애를 “극복”하게 하는 마법의 도구가 아닙니다.7 다만 적절한 도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넓힙니다. 눈으로 읽기 어려운 문서를 음성이나 점자로 확인하게 하고,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닿게 하고, 들리지 않는 소리를 자막으로 바꾸고, 이동과 조작의 부담을 줄입니다. 일터에서 보조공학기기는 장애인 노동자가 능력을 발휘하기 전에 통과해야 하는 불필요한 장벽을 낮춥니다.

그런데 같은 주에 다른 방향의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리걸타임즈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을 장애인일자리사업에서 일률적으로 배제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사건의 원고는 심한 정도의 뇌병변장애인으로, 장애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해 동료상담 업무를 하던 중 장기요양 1등급 판정을 이유로 퇴직 처리됐습니다. 법원은 장기요양등급 판정만으로 장애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할 근로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고, 장애인일자리사업은 적성과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발굴하는 사업이며, 수행기관은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봤습니다.8

여기서 이번 주제의 긴장이 드러납니다. 한쪽에서는 AI와 로봇과 보조공학기기가 장애인의 직무 가능성을 넓힌다고 말합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제도가 등급 하나를 이유로 이미 일하고 있던 사람을 일터 밖으로 밀어냅니다. 기술은 가능성을 여는데, 제도는 일자리를 닫는 셈입니다.

장애인 고용에서 중요한 것은 “무슨 기기를 지원했는가”만이 아닙니다. 그 기기가 어떤 직무 재설계와 만나는가, 장애인 당사자가 보조공학기기의 사용법을 익히고 직무에 적용할 시간과 지원을 받는가, 일터가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제도가 사람의 가능성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일률적으로 잘라내고 있지는 않은가를 함께 봐야 합니다.

보조공학기기는 장애인을 일터에서 일하는 당당한 노동자로 만드는 도구입니다. 하지만 그 도구가 힘을 내려면 제도가 먼저 사람을 배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할 수 있음을 판단하는 기준은 등급표 하나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지원과 환경 안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브리핑 4. 모두의 음악 — 소리만으로 끝나지 않는 수업

미래엔은 특수교육디지털교육협회 SeeD와 함께 포용형 음악 활동 앱 ‘모두의 음악’을 공개했습니다. 이 앱은 초등학교 4학년 음악 교과 15~16차시 수업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됐고, 실제 교실 수업 흐름과 학생 참여 방식을 반영해 개발됐다고 합니다. 저시력 학생을 위한 색상 반전과 확대·축소,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실시간 자막과 음성 안내,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VoiceOver 지원 등이 함께 소개됐습니다.9

이 소식에서 제가 눈여겨본 것은 앱의 기능 목록보다 “같은 학습 내용을 각자의 방식대로 참여한다”는 방향입니다. 통합교육에서 자주 놓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교실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같은 수업에 참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과서의 그림을 볼 수 있는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화면을 확대하거나 반전해 볼 수 있는가, 화면 읽기 프로그램으로 조작할 수 있는가, 활동의 순서를 이해하고 자기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가 함께 열려야 합니다.

음악 수업은 특히 더 그렇습니다. 음악은 소리만의 수업처럼 보이지만 실제 교실에서는 악보, 이미지, 영상, 자막, 몸의 움직임, 친구와의 협력, 디지털 자료가 함께 움직입니다. 청각장애 학생은 소리만으로 설명하는 수업에서 소외될 수 있고, 시각장애 학생은 화면 위 기호와 버튼이 ‘닿을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저시력 학생에게는 대비와 크기와 색이 수업 참여를 좌우할 수 있습니다.

‘모두의 음악’은 장애로 인한 차이를 없애겠다고 말하기보다 서로 다른 참여 방식을 수업 안에 두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이 표현이 중요합니다. 포용형 수업은 모두를 같은 방식으로 맞추는 일이 아닙니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가되, 학생마다 다른 감각과 도구와 속도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물론 앱 하나로 통합교육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실제 교실에서 교사가 어떻게 안내하는지, 특수학급과 통합학급이 어떻게 협력하는지, 학생이 앱을 혼자 조작할 수 있는지, 보조공학기술과 실제로 얼마나 잘 맞는지는 앞으로도 계속 검증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교육 접근성은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는 순간보다 그 자료가 교실에서 쓰이는 순간에 더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사례는 반갑습니다. 접근성은 별도의 보충자료가 아니라 수업 설계 안에 녹아들어가야 합니다. 학생이 같은 교실에서 같은 내용을 배운다는 말은, 같은 방식으로 버티라는 강요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을 때, 같은 수업이라는 말도 비로소 힘을 얻을 것입니다.


브리핑 5. 릴루미노와 저시력 게임 접근성 — 화면의 윤곽, 되돌아온 취미

오목교 전자상가는 삼성의 릴루미노 모드를 저시력 당사자와 함께 체험하는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릴루미노 모드는 화면의 색상과 대비, 윤곽선을 조절해 사람이나 사물의 윤곽을 더 잘 보이게 하는 접근성 옵션입니다. 영상에서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중심 시력이 거의 없는 저시력 당사자가 TV 영상과 게임 화면에서 이 기능을 어떻게 느끼는지 함께 확인했습니다.10

처음에는 TV 영상 시청이었습니다. 검정 윤곽선이 인물의 위치를 더 잘 잡아 주고, 화면 속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포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바로 “효과가 있다”고 끝내지 않은 점이 좋았습니다. 저시력인의 시력 양상은 매우 다양합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는 설정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대로 맞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영상도 이 점을 조심스럽게 짚었습니다.

더 흥미로운 장면은 게임 테스트였습니다. 제작진은 릴루미노 모드가 화면에 표시되는 모든 내용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보고 게임에 연결해 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처음 시도는 쉽지 않았습니다. 75인치 대형 TV는 오히려 너무 넓었습니다. 중심 시력이 거의 없고 주변부 시야로 화면을 파악해야 하는 사용자에게 큰 화면은 오히려 부담이었습니다. 마우스 커서나 조준점이 잘 보이지 않는 게임, 화면이 어둡고 사물이 많은 게임, 한국어 더빙이 없어 자막을 함께 봐야 하는 게임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조건을 바꿨습니다. 화면을 나누어 릴루미노 모드가 적용된 영역을 더 작게 보고, 움직임이 좌우로 비교적 분명한 ‘The King of Fighters 97’을 시도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장면이 나왔습니다. 검정 윤곽선이 캐릭터의 위치와 움직임을 잡는 데 도움이 됐고, 당사자는 오랜만에 게임을 해 볼 수 있겠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영상 속 “15년 정도” 게임을 하지 않았다는 고백은 이 기술의 의미를 기능 설명보다 더 잘 보여 줍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릴루미노가 게임 접근성을 해결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이 영상은 접근성 기능이 어떤 조건에서 도움이 되고, 어떤 조건에서는 부족한지를 함께 보여 줍니다. 화면 크기, 게임 장르, 색 대비, 조작 방식, 커서와 목표물의 표시, 더빙과 자막, 사용자의 시야 특성이 모두 결과를 바꿉니다. 접근성은 기능 하나를 구현하는 일이 아니라, 사용자와 콘텐츠의 구조와 환경이 서로 만나는 일입니다.

이 이야기는 접근성 브리핑에서 꾸준히 다루어 온 게임 접근성의 맥락 안에 있습니다. 제1호에서는 시각장애인 게임 길드 오토핀사운드가 소리와 TTS, 동료의 안내를 한대 엮어 디아블로4를 플레이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제4호에서는 국내 게임 접근성 가이드라인을 다루며 “기준이 생겨야 요구할 수 있고, 요구할 수 있어야 바꿀 수 있다”고 썼습니다. 제13호에서는 넷마블의 사운드 접근성 기능을 보며 그 기준이 실제 플레이 안에서 길 안내와 경고음, 조작 가능한 선택지로 내려와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이번 릴루미노 사례는 소리만이 아니라 화면의 윤곽과 크기, 시야 특성이 게임 접근성의 조건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접근성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취미를 다시 현실로 불러오는 타임머신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게임은 단순한 오락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친구와 나누던 시간, 학창 시절의 추억,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감각, 내가 아직 할 수 있다는 느낌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윤곽선 하나가 화면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그 화면이 잊고 지냈던 즐거움으로 이어진다면, 접근성은 그만큼 구체적인 생활의 감각으로 성큼 다가오는 것입니다.


마치며

이번 호의 소식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출발했습니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 은행과 지원금, 보조공학기기와 일자리, 음악 수업, TV와 게임 화면처럼 겉으로 보면 흩어진 주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씩 읽다 보면 같은 자리로 돌아옵니다.

“나는 내 스스로, 내 손으로 직접 이 일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활동 지원사 선생님에게 길 안내 부탁하고, 근로지원인 선생님에게 업무 보조를 도와달라고 하면 되는데, 굳이 제가 보행을 배우고 컴퓨터와 인공지능 사용법을 익힐 필요가 있을까요?”

이는 장애인 당사자가 스스로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놓아버리는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접근성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것에 책임을 지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접근성은 나를 데려가는 안내자가 아닙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내 스스로 갈 수 있게 돕는 도구입니다. 이번 한 주도 여러분의 방식과 여러분의 속도대로 걸어가는 멋진 한 주를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Footnotes

  1.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5년 실태조사 발표는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비율을 전체 22.7%, 청소년 43.0%, 유·아동 26.0%로 제시합니다. 이 수치는 과의존 대응 정책의 필요성을 보여 주지만, 김경식 칼럼은 장애인의 스마트폰 사용을 단순 과의존이나 중독 담론으로만 해석하기 어렵고, 의사소통·정보접근·노동·관계망·사회참여의 기반으로 함께 보아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NC문화재단과 스마트AAC의 AAC 앱 소개도 스마트폰·태블릿이 말과 글로 소통하기 어려운 사람의 의사표현 도구로 쓰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 과학기술정보통신부/KDI 경제정보센터, 「2025년 디지털 정보격차·웹 접근성·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 결과 발표」(2026.3.26.), 에이블뉴스, 「장애인의 스마트폰 스크린타임과 디지털 시민권의 문제」(2026.5.27.), NC문화재단, 「AAC」, 스마트 AAC, 「스마트AAC란?」

  2. 2026년 3월 시행으로 안내된 초·중등교육법 개정 취지는 수업 중 스마트폰 등 스마트기기 사용을 원칙적으로 제한하되, 장애가 있거나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이 보조기기로 사용하는 경우, 교육 목적의 사용, 긴급 상황 대응 등은 예외로 둔다는 데 있습니다. 이 예외는 편의적 배려가 아니라 학습 접근권과 정당한 편의 제공의 문제입니다. 같은 스마트폰이라도 어떤 학생에게는 게임기나 알림 기기일 수 있지만, 다른 학생에게는 화면 확대기, 화면 읽기 프로그램 실행 기기, AAC 의사소통 도구, 일정·주의집중 보조도구, 건강·안전 확인 수단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각급 학교는 스마트기기 제한 학칙을 만들 때 보조공학기기로서의 사용 예외를 명시하고, 교사 재량이나 현장 분위기에 맡기지 말고 학생별 필요에 따라 실제로 적용해야 합니다. 예외 조항이 있어도 현장에서 “수업 중 스마트폰은 무조건 안 된다”로 운영되면, 일반 규칙이 장애 학생에게는 학습 참여 제한과 정당한 편의 제공 거부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수업 중 스마트폰 사용 금지, 어떻게 생각하세요?」(2025.9.15.), 경향신문, 「수업 중 ‘스마트폰 금지’ 법안 국회 본회의 통과」(2025.8.27.), 보건복지부,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요」

  3. KB국민은행은 개인 인터넷뱅킹 주요 메뉴와 증명서 발급 화면에 전자점자 파일을 제공하고, 토스뱅크는 모바일뱅킹 통장사본에 전자점자서비스를 제공하며 향후 금융·증명 문서 전반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KB 보도자료는 전자점자가 계좌조회·거래내역조회·이체결과조회와 통장사본·예금잔액증명서·부채증명서·금융거래확인서·금융소득종합과세조회 등에 적용된다고 설명합니다. | ZDNet Korea/Daum, 「시각장애인 금융 접근성 향상하는 은행들」(2026.5.30.), 한국경제, 「KB국민은행, 포용금융 실천 위한 인터넷뱅킹 ‘전자점자 서비스’ 도입」(2026.5.29.)

  4. 행정안전부 공식 안내에 따르면 고유가 피해지원금은 지역사랑상품권, 신용·체크카드, 선불카드 중 선택해 받을 수 있고 2026년 8월 31일까지 사용해야 합니다. CBS노컷뉴스 보도는 이 과정에서 선불카드 점자 표기와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안내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짚었고, 신한카드 안내도 선불카드 잔액 알림은 별도 소지자 등록 뒤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돈을 받는 절차와 남은 금액 확인 절차 모두 접근성이 함께 설계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 행정안전부, 「고유가 피해지원금」, CBS노컷뉴스/Daum, 「점자표시·쉬운 안내 없는 고유가 지원금…인권위 “차별 여지”」(2026.6.1.), 신한카드, 「고유가 피해지원금 이용안내」

  5. 제21회 대한민국 보조공학기기 박람회 공식 페이지는 2026년 5월 28~29일 서울 양재 aT센터 제1전시장에서 열리는 행사이며, 고용노동부가 주최하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주관한다고 안내합니다. 이데일리는 60여 개 업체가 200여 점의 보조공학기기와 신기술을 선보인다고 보도했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개별 보도자료에서도 행사 개최 안내와 2일차 현장 사진 보도자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2026 보조공학박람회 공식 페이지, 이데일리, 「AI·로봇으로 장애인 직업 생활 돕는다」(2026.5.25.), 한국장애인고용공단, 「2026년 제21회 대한민국 보조공학기기 박람회」 개최 안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제21회 대한민국 보조공학기기 박람회」 2일차 사진 보도자료

  6. YTN 보도는 시각장애인 공무원의 보조공학기기 사용 사례와 장애인고용공단의 근로 장애인 대상 보조공학기기 지원을 소개했습니다. 기사에서는 지난해 기준 정부 지원을 받아 보조공학기기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8천 명이 넘는다고 설명합니다. | YTN, 「‘대신 보고 대신 들고’…첨단 기기로 장애인 고용 높인다」(2026.5.31.)

  7. 사실 저 알리를 비롯한 많은 장애인들은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장애는 일생을 살아가면서 함께 지니고 가야 하는 장애인의 특성이기 때문에, “장애를 극복한다”는 프레임은 결국 장애인을 배제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권리협약 소개는 협약이 장애를 개인의 재활이나 시혜적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 참여와 기회균등을 보장하는 권리에 기초한 접근으로 본다고 설명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조공학기기는 장애인을 비장애인처럼 “고쳐서” 일하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환경과 직무와 정보 접근의 장벽을 낮춰 당사자가 이미 가진 역량을 드러내게 하는 조건에 가깝습니다. 교육 현장의 보조공학기기 대여 안내도 개인별 장애 특성과 교육적 요구에 따른 교수·학습 접근성 보장을 목적으로 제시합니다. 일터의 보조공학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합니다. | 보건복지부, 「장애인권리협약 소개」, Council of Europe, 「Disability and Disabilism」, 인천특수교육지원센터, 「보조공학기기」

  8. 리걸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장기요양등급 판정자를 장애인일자리사업에서 일률 배제한 보건복지부 사업안내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원고에게 당초 계약기간까지 받을 수 있던 나머지 급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요도 고용 영역에서 모집·채용·임금·인사상 차별금지와 직무수행에 필요한 정당한 편의제공을 차별금지 내용으로 설명합니다. | 리걸타임즈, 「[민사] “장기요양등급 판정받았다고 장애인일자리사업에서 일률 배제 잘못”」(2026.6.1.), 보건복지부,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요」

  9. 모두의 음악은 미래엔과 특수교육디지털교육협회 SeeD가 공동 개발한 포용형 음악 활동 앱입니다. 보도자료와 기사에 따르면 이 앱은 초등학교 4학년 음악 교과 15~16차시 수업 활용을 염두에 두고 iOS 환경에서 제공되며, 저시력 학생을 위한 색상 반전·확대/축소, 청각장애 학생을 위한 실시간 자막·음성 안내,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VoiceOver 지원을 포함합니다. | 뉴스와이어, 「미래엔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 맞아 포용형 음악 활동 앱 ‘모두의 음악’ 공개」(2026.5.20.), 조선에듀, 「미래엔, 포용형 음악 활동 앱 ‘모두의 음악’ 공개」(2026.5.20.), 에듀플러스, 「미래엔,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 맞아 포용형 음악 활동 앱 ‘모두의 음악’ 공개」(2026.5.21.)

  10. 영상 전사 기준, 릴루미노 모드는 저시력 사용자의 영상 시청과 일부 게임 화면에서 윤곽과 위치 파악을 도울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삼성전자 공식 설명도 릴루미노 모드가 윤곽선, 명암 대비, 색채, 선명도 등을 조정해 저시력 사용자의 TV 시청을 돕는 기능이라고 소개합니다. 다만 삼성의 고지처럼 이 기능은 의료 기능이 아니며, 지원 모델과 입력 소스에도 제한이 있습니다. 영상에서도 화면 크기, 게임 장르, 조작 방식, 더빙 여부, 사용자의 시야 특성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라졌으므로, 이 사례를 모든 저시력 사용자에게 일반화하기는 어렵습니다. | 오목교 전자상가/YouTube, 「시각장애인과 게임을 할 수 있을까요? 삼성 TV에 달린 이 옵션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삼성전자, 「릴루미노」, Samsung Newsroom Korea, 「삼성 TV ‘릴루미노 모드’, ‘저시력 케어’ 글로벌 인증 획득」(2023.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