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여러분, 혹시 매년 5월 셋째 목요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바로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입니다. 2026년 올해는 5월 21일이네요.
접근성을 기억하고 생각하는 날이 따로 있다는 게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묘한 기분도 듭니다. 접근성은 특정한 날에만 꺼내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특히 장애 때문에 여러 불편을 겪는 우리에게 접근성은 매일 생활하면서 마주해야 하는, 어쩌면 친구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1 휴대폰을 켜고, 학습 자료를 읽고, 민원 서류를 확인하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병원 예약을 하는 일까지 접근성은 우리와 늘 함께 합니다.
좀 어색하더라도 1년 중 하루를 기념일로 정하고 기억하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평소에는 자주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웹 사이트는 누구에게 열려 있는지, 앱은 어떤 몸과 감각을 기본으로 삼고 만들어졌는지, 정보는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닿고 있는지, 그 정보가 읽을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며, 실제로 쓸 수 있는 말인지, 이러한 문제를 다시 고민하게 하는 데에는 역시 ‘기념일’ 만한 건 없겠지요.
접근성 브리핑 제10호에서 저는 문서 접근성을 다루며, 문서가 공개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번 제11호에서는 그 질문을 조금 넓혀 보고 싶습니다. 문서와 서비스, 보조기기와 교육, 쉬운 정보와 기업의 접근성 세션까지. 겉으로는 다른 소식들이지만 그 맥락은 하나로 모입니다.
접근성은 구호에 머물지 않고, 실제 사용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제11호 - 2026년 5월 12일(화)
브리핑 1.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 — 접근성을 생각하는 날, 그다음은 실천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올해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Global Accessibility Awareness Day, GAAD)은 2026년 5월 21일 목요일입니다.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올해가 벌써 15회째라고 소개합니다. 이날의 목적은 사람들이 디지털 접근과 포용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실제로 접근성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배우게 하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디지털 접근성은 장애가 있는 사람이 웹, 모바일 앱, 디지털 콘텐츠와 서비스를 독립적으로 이용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2
말은 단순하지만, 담고 있는 기준은 가볍지 않습니다. 접근성은 누군가 대신 읽어 주거나, 옆에서 도와주거나, 특정 기기나 기술이 일을 대신하게 만드는 작업이 아닙니다. 스스로 접근하고, 탐색하고, 선택하고,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디지털 접근성은 화면 읽기 프로그램 사용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막이 필요한 사람, 마우스를 쓰기 어려운 사람, 복잡한 화면에서 길을 잃기 쉬운 사람,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기 힘든 사람 모두와 이어집니다.
GAAD Foundation은 2021년,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 10주년을 계기로 출범했습니다. 공식 설명은 이 재단의 사명을 기술과 디지털 제품 개발 문화 안에 접근성을 핵심 요구사항으로 넣는 일로 밝히고 있습니다.3 제가 기존 접근성 브리핑에서 꾸준히 제기해 온 문제도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 접근성을 출시 직전에 확인하는 항목 하나로 남겨 두지 말고, 제품과 서비스를 구상하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기본 조건으로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4
그러나 으레 이런 기념일에 하듯이 접근성 로고를 올리고, 행사 페이지를 열고, 하루짜리 캠페인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이 정말 의미 있으려면, 이날의 선언이 우리의 업무 방식과 제품 설계, 예산과 교육, 고객 지원을 실제로 바꿀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 알리는 GAAD를 단순한 기념일로만 소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접근성 소식들이 실제 사용과 교육, 이해 가능한 정보로 이어지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브리핑 2. 정보통신보조기기 보급사업 — 필요한 사람에게 신청 정보가 먼저 닿을 수 있도록
2026년 정보통신보조기기 보급사업 신청이 시작됐습니다. 이 사업은 장애인의 정보 접근과 정보 이용을 돕기 위해 점자 정보 단말기, 문자 인식 기기, 특수 입력장치, 영상통신기기 같은 정보통신보조기기를 지원하는 사업입니다. 올해 신청기간은 2026년 5월 7일부터 6월 23일까지입니다.5
꼭 필요한 분들이 놓치지 않도록 핵심 정보를 먼저 정리해 드립니다.
- 신청기간: 2026년 5월 7일(목)부터 6월 23일(화)까지
- 신청대상: 등록장애인, 상이등급 판정을 받은 국가유공자 등
- 보급기기: 총 128종
- 시각장애인용 61종
- 지체·뇌병변장애인용 19종
- 청각·언어장애인용 48종
- 신청방법: 정보통신보조기기 누리집 https://at4u.or.kr 온라인 신청, 또는 거주지 지자체 방문·우편 접수
- 상담: NIA 전국 공통 전화상담 1588-2670
- 서울시 기준 일정: 7월 16일 보급대상자 발표, 7월 17일부터 31일까지 개인부담금 납부, 8월부터 10월까지 보급
서울시 보도 기준으로 보면, 장애인은 제품 가격의 80%를 지원받고, 기초생활수급자 또는 차상위계층인 경우 최대 94%까지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세부 접수처와 지원 조건은 지역별 공고를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같은 전국 사업이라도 접수 창구와 안내 방식은 지자체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보조공학기기는 단순한 장비가 아닙니다. 점자 정보 단말기는 책과 문서, 이메일과 메신저로 이어지는 통로이며, 문자 인식 기기는 종이문서와 안내문을 읽는 길이고, 특수 입력장치는 공부와 일을 가능하게 하는 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업은 그저 물건을 나눠 주는 사업이라기보다 정보에 접근하고 사회에 참여할 조건을 넓히는 의미 있는 일입니다.
다만 보급이 곧 사용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좋은 기기를 받아도 사용법을 배울 기회가 부족하거나, 고장이나 설정 문제를 물어볼 곳이 없다면 기기는 장롱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 있을 지도 모릅니다. 서울시는 150만 원 이상 제품에 대해 사전 방문 상담과 전문가 평가를 거쳐 실제 활용 가능성을 확인하겠다고 설명합니다. 이런 상담과 평가는 선정 전 절차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보급 이후에는 초기 설정 지원, 사용자 교육, 사후 점검까지 따라와야 합니다.
접근성 브리핑 제8호에서 저는 서울시의 보조기기 보급 규모를 보며, 필요한 사람에 비해 보조공학기기의 숫자가 충분한지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질문을 조금 바꿔 보겠습니다. 필요한 사람이 이 정보를 제때 알고 신청할 수 있는가? 선정된 사람은 자기의 일상생활에 맞는 기기를 받을 수 있는가? 받은 기기는 실제 사용으로 이어지는가? 정보통신보조기기 보급사업이 더 많은 당사자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려면, 이 세 질문을 함께 고려해야 하겠습니다.
브리핑 3. 시청각장애인을 가르치는 선배 선생님들 — 동료가 넓히는 접근성
이번 주 마음에 오래 머무른 소식은 시청각장애인 점자 교육 보도였습니다. 보도된 기사에서는 앞을 볼 수도, 소리를 들을 수도 없는 시청각 중복장애인이 점자를 배우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먼저 배운 시청각장애인이 후배를 가르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생히 보여 줍니다.6
보도 속 김지현 씨는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가 있었고, 30대에 시력마저 잃었습니다. 인터뷰는 질문을 촉수화 통역으로 전달하고, 다시 수어와 대독을 거쳐 말로 옮기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김 씨는 매일 아침 점자 책을 펼치고, 다른 시청각장애인을 가르칠 준비를 합니다.
기사에서 김 씨는 한소네로 인터넷을 쓰고, 친구들과 카카오톡을 하기 위해서라도 점자를 꼭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문장이 중요합니다. 점자는 종이에 찍힌 글자만이 아닙니다. 시청각장애인에게 점자는 손끝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방법이고, 디지털 기기를 쓰기 위한 기초이며, 다른 사람과 관계를 이어 가는 언어가 됩니다.
시청각장애인이 점자를 배우려면 훨씬 많은 지원이 필요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강사 외에도 촉수화 통역사 2명, 모니터 요원, 활동지원사 등이 함께 붙어야 하고, 촉수화 통역사는 힘이 많이 들어 15분마다 교대가 필요합니다. 국내 시청각장애인은 1만 명에 달하지만, 30%가 넘는 이들이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도 나옵니다.
이 장면은 한 번의 방송 보도만으로 갑자기 등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앞서 경향신문은 LG상남도서관이 헬렌켈러센터 등 4개 단체와 함께 ‘시청각 장애인 점자 강사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시청각장애인이 점자를 익힌 뒤 강사가 되면, 수강생인 시청각장애인과 촉수화로 1대1 강의를 할 수 있다는 설명도 함께 나옵니다.7 결국 핵심은 단순히 강사를 한 명 더 세우는 일이 아닙니다. 교육을 받았던 당사자가 다시 교육의 주체가 되는 일입니다.
이 장면을 감동적인 이야기로만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먼저 배운 당사자가 선생님이 되어 후배를 만나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며,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동시에 제도의 빈틈을 드러냅니다. 교육받을 기회가 부족하니까 먼저 배운 사람이 길을 내야 했습니다. 통역과 지원 인력이 충분하지 않으니까 당사자 동료 교육이 더 절실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접근성을 기술의 문제로만 다루면 이 장면을 놓치기 쉽습니다. 점자정보단말기와 촉수화, 활동지원과 동료 강사, 교육비와 이동 지원이 함께 있어야 한 사람이 배울 수 있습니다. 접근성은 버튼 하나, 기능 하나, 기기 하나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배울 시간과 가르칠 사람, 손을 포개어 말을 전해 줄 통역과 그 시간을 감당할 제도가 뒷받침되어야만 비로소 접근성을 논할 수 있습니다.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을 앞두고 이 소식을 꼭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디지털 접근성은 웹사이트와 앱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결국 사람의 배움과 소통까지 닿아야 합니다. 시청각장애인이 점자를 배우고, 다시 누군가를 가르치는 장면은 접근성의 본질이 무엇인지 조용히 되새겨보게 합니다.
브리핑 4. 온글 — 읽을 수 있는 정보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정보로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에 맞춰 쉬운 글 전문 AI 서비스 ‘온글’도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이큐포올과 소소한소통은 5월 21일 온글을 정식 출시하고 온라인 설명회를 연다고 밝혔습니다. 온글은 복잡한 프롬프트를 입력하지 않아도 텍스트를 쉬운 글로 바꿀 수 있도록 만든 웹 기반 SaaS 서비스입니다.89
이 소식에서 제가 주목한 부분은 ‘쉬운 글’입니다. 접근성을 말할 때 우리는 자주 화면 읽기 프로그램, 키보드 조작, 대체 텍스트, 자막 같은 요소를 떠올립니다. 물론 모두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런데 정보가 기술적으로 열려 있더라도 문장이 너무 어렵거나, 행정 용어가 많거나, 맥락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쓰여 있다면 그것 자체가 또 다른 장벽이 되고 맙니다.
정보 접근성은 읽을 수 있다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이해한 뒤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지 제도 안내, 병원 서류, 재난 문자, 학교 공지, 금융 약관 같은 정보는 특히 그렇습니다. 문장은 열려 있는데 뜻이 닫혀 있다면, 사용자는 여전히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온글은 소소한소통이 쌓아 온 쉬운정보 제작 경험과 이큐포올의 AI 기술을 결합했다고 설명합니다. 기관별 정책이나 업무 매뉴얼 같은 자체 데이터를 활용한 RAG10 데이터 구축도 지원하고, AI 변환 결과에 대해 쉬운정보 전문가와 발달장애인 등 실제 정보 사용자의 검증을 받을 수 있는 전문가 감수 서비스도 운영한다고 합니다.
쉬운 글은 단순히 문장을 짧게 자르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정보를 남기고, 어떤 순서로 설명하고, 어떤 단어를 바꾸고, 독자가 무엇을 결정해야 하는지 분명히 하는 일입니다. AI가 초안을 빠르게 만들 수는 있어도, 실제 사용자와 전문가의 검증이 빠지면 쉬운 정보라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온글 같은 서비스가 더 많아지고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기대와 함께 기준도 세워야 합니다. 변환된 문장이 정말 이해하기 쉬운가? 중요한 정보가 빠지지는 않았는가? 기관이 책임져야 할 설명을 AI 변환 결과 뒤에 숨기지는 않는가? 발달장애인, 고령자, 문해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 이런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합니다.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에 쉬운 글 AI가 나온다는 것은 상징적입니다. 접근성은 더 이상 볼 수 있는가, 들을 수 있는가에만 머물 수 없습니다. 이제는 읽을 수 있는가, 이해할 수 있는가, 자기 결정에 쓸 수 있는가까지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브리핑 5. 기업의 접근성 세션 — 당사자도 배워야 하는 접근성 기능
마지막으로 Apple의 ‘Today at Apple’ 그룹 세션 안내를 짚어 보겠습니다. Apple Korea의 그룹 세션 페이지는 코딩, 업무 생산성, 창작 세션과 함께 ‘손쉬운 사용’ 기능도 시작해 볼 수 있도록 돕겠다고 안내합니다. 가까운 Apple Store에서 최소 3명부터 최대 15명까지 그룹을 위한 Today at Apple 세션을 예약할 수 있습니다. 애플 기기를 구매한 지 얼마 안 됐거나 접근성 관련 ‘손쉬운 사용’ 기능의 기초를 배우고 싶은 분들께서 신청하시면 좋겠습니다.
원래 ‘손쉬운 사용’ 기능은 애플 제품의 운영체제 안에 들어 있는 기능입니다. 하지만 기능이 있다고 해서 모두가 곧바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VoiceOver, 확대/축소, 실시간 자막, 보조 터치, 음성 명령 같은 기능은 필요한 사람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지만, 정작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설정 메뉴 자체가 낯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애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 교사, 활동지원사, 직장 동료도 이런 기능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기껏 제조사에서 애써 만들어 놓은 접근성 기능이 있다고 해도 사용자가 이 기능을 어떻게 쓰는지 모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테지요.
그래서 접근성 세션은 중요합니다.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에서 접근성을 함께 가르친다는 것은, 접근성을 사후 지원이나 고객센터의 예외 업무로만 보지 않겠다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세션이 정말 접근성을 다루는 교육이 되려면 조건이 필요합니다. 예약 과정이 접근 가능해야 하고, 매장 공간과 안내 방식이 다양한 장애 유형을 고려해야 하며, 설명하는 사람은 기능 이름만 나열하지 않고 실제 사용 장면을 함께 다뤄야 합니다. 여태껏 애플이 해오던 방식을 감안한다면 이번 접근성 세션은 그런 점에서는 어느 정도 신뢰를 갖고 다가갈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생각됩니다.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 공식 사이트는 사람들이 접근성 관련 행사에 참여하고, 직접 행사를 열고, 접근성 활동에 동참할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저는 이 문장을 기업에도 적용해 보고 싶습니다. 기업의 접근성 활동도 보여 주는 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접근성 세션은 한 번의 홍보 이벤트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배움의 자리여야 합니다. 사용자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기능을 켜고, 조정하고, 자기 방식대로 써 볼 수 있어야겠지요.
이 이야기는 이번 호의 다른 소식들과도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보조공학기기를 받은 후에는 사용법을 배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점자를 배우는 일에는 동료와 통역, 지원 인력이 필요합니다. 쉬운 글 AI도 실제 사용자의 검증이 필요합니다. 기업 접근성 세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접근성은 기능을 제공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기능이 필요한 사람에게 설명되고, 손에 익숙해지고, 생활 속에서 쓰일 때, 즉 당사자에게 ‘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참된 힘을 발휘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치며
저 알리는 ‘세계 접근성 인식의 날’이 ‘어린이날’이나 ‘장애인의 날’처럼 그저 스쳐가는 기념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접근성을 외치는 날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접근성을 증진시키는 노력과 실천입니다. 이 서비스는 누구에게 열려 있을까, 이 정보는 필요한 사람에게 닿는가, 이 기기는 실제로 쓰이는가, 이 교육은 배울 권리를 보장하는가, 이 문장은 이해할 수 있는 글인가를 끊임없이 되묻지 않으면 ‘접근성’은 그저 그런 구호에 머무를 것입니다.
접근성은 결국 그런 질문들이 쌓이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이의 하루를 조금 덜 답답하게 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공부와 일과 관계를 조금 더 ‘닿을 수 있게’ 만드는 일. 이번 주의 소식들이 그 방향으로 이어지는지, 알리의 접근성 연구소도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Footnotes
-
a11y는 accessibility의 숫자 축약어(numeronym)입니다. 단어의 첫 글자
a와 마지막 글자y를 남기고, 가운데 11글자를 숫자로 적은 표현입니다. The A11Y Project는 이 표현이ally를 멋스럽게 바꾼 말이 아니라 접근성을 줄여 쓴 말이고, 실제 발음으로는A-eleven-Y,A-one-one-Y,ally가 함께 쓰이고 있습니다. 영어 ally는 맥락에 따라 동맹, 협력자, 지지자, 같은 편이 되어 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제가 알리라는 이름을 쓰는 것도 접근성을 필요한 사람 곁에 서는 동료의 언어로 읽고 싶기 때문입니다. | The A11Y Project, 「Quick tip: a11y and a brief numeronyms primer」, Cambridge Dictionary, 「ally」. ↩ -
GAAD 공식 사이트는 접근성 문제를 장애인 개인의 예외적 어려움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10억 명이 넘는 장애·손상 경험자와 연결된 문제로 설명합니다. 같은 페이지는 2020년 WebAIM의 100만 개 홈페이지 분석 결과도 함께 소개하며, 낮은 색 대비, 이미지 대체 텍스트 누락, 빈 링크, 입력 양식 레이블 누락 같은 문제가 여전히 널리 남아 있다고 짚습니다. 그래서 GAAD는 단순한 기념일이라기보다, 웹과 앱을 만드는 사람들이 “아직도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부분”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 Global Accessibility Awareness Day, 「Global Accessibility Awareness Day」. ↩
-
GAAD Foundation의 설명에서 중요한 점은 접근성을 별도 캠페인이나 사후 점검 항목이 아니라 “기술과 디지털 제품 개발 문화”의 문제로 본다는 데 있습니다. 접근성이 개발 문화 안에 들어간다는 말은 기획, 디자인, 개발, 테스트, 고객 지원, 예산 배분까지 이어지는 조직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 Global Accessibility Awareness Day, 「Global Accessibility Awareness Day」, GAAD Foundation. ↩
-
이 문제의식은 제11호에서 새로 꺼낸 것이 아니라, 접근성 브리핑 전체에서 여러 번 다른 사례로 되짚어 온 흐름입니다. 제2호 브리핑 5에서는 접근성이 주된 설계 뒤에 붙는 추가 작업이 되어서는 안 되며, “화면 없이도 작동하는 설계”가 기본값이 되어야 한다고 썼습니다. 제4호 브리핑 2에서는 장애 당사자가 기술의 설계 테이블에 처음부터 앉아야 한다는 원칙을 다뤘고, 제7호 브리핑 4에서는 접근성이 기술 개발 이후의 보완책이 아니라 처음부터 고려되어야 할 권리라는 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제9호 브리핑 5에서는 접근성이 나중에 덧붙이는 기능인지, 처음부터 설계에 들어가야 하는 기준인지 다시 물었고, 제10호 브리핑 1에서는 이 질문을 공공문서의 기본값 문제로 옮겨 다뤘습니다. ↩
-
서울시의 2025년 사업 결과를 함께 보면 보급사업의 체감 규모가 더 분명해집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2025년에는 2,575명이 신청했고 659명이 선정됐습니다. 신청자 기준 선정률은 약 25.6%, 경쟁률은 약 3.9대 1입니다. 필요한 사람이 신청 정보를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상담·평가·예산·보급 이후 교육까지 함께 설계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장애인 정보통신보조기기 보급」(2026.4.27.), 연합뉴스, 「서울시, 장애인 700명에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2026.4.20.). ↩
-
SBS 보도는 인터뷰 발화가 촉수화 통역과 수어, 대독을 거쳐 전달됐으며, 대독 내용이 수어와 일부 다를 수 있다고 따로 밝혔습니다. 그래서 이 꼭지에서는 당사자의 말을 긴 직접 인용으로 옮기기보다, 보도에서 확인되는 학습 과정과 지원 구조를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시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은 ‘말을 듣고 답하는’ 단순한 인터뷰 형식으로 포착되기 어렵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 SBS/다음, 「못 보고 못 듣지만…벽을 깬 ‘선배’ 선생님들」(2026.5.9.) ↩
-
경향신문 보도는 시청각장애가 현행 15가지 장애 유형에 따로 포함되지 않아 교육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고 보도합니다. 또 한 번의 점자 수업에도 구어, 수어, 촉수화가 이어지고 여러 지원 인력이 함께해야 한다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이 배경을 놓치면 당사자 강사 양성과정을 단순한 미담으로만 읽기 쉽지만, 실제로는 제도 밖에 밀려난 교육 접근권을 당사자와 현장이 함께 메우고 있는 장면입니다. | 경향신문, 「입에서 손으로, 손에서 마음으로 잇는 수업…‘시청각 장애인’도 선생님 된다」(2026.4.20.). ↩
-
온글 관련 보도는 서비스 출시와 기능 구성을 설명하는 기사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이 보도만으로 실제 변환 품질, 발달장애인 사용성, 기관별 데이터 적용 결과가 충분히 검증됐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쉬운 글 서비스는 문장을 바꾸는 기술뿐 아니라 누가 검증하고, 무엇을 빠뜨리지 않으며, 최종 정보 책임을 기관이 어떻게 지는지까지 함께 봐야 합니다. | 스트레이트뉴스, 「이큐포올·소소한소통, 쉬운 글 AI 서비스 ‘온글’ 출시」(2026.5.7.), ZDNet Korea, 「이큐포올·소소한소통, ‘온글’ 서비스 개시…온라인 설명회 개최」(2026.5.7.). ↩
-
SaaS(Software as a Service)는 사용자가 소프트웨어를 직접 설치·유지관리하기보다 인터넷을 통해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쓰는 클라우드 기반 제공 방식입니다. 설치 부담이 줄고 웹브라우저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접근성 관점에서는 로그인, 결제, 문서 편집, 관리자 화면, 오류 메시지 같은 실제 사용 흐름이 모두 접근 가능해야 합니다. 웹 기반 서비스라는 말 자체가 곧 접근성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 U.S. General Services Administration, Cloud Information Center, 「Software as a Service (SaaS)」. ↩
-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검색 증강 생성)는 AI가 모델 안에 이미 학습된 내용만으로 답을 만들게 하지 않고, 질문과 관련된 외부 문서나 지식베이스를 먼저 검색한 뒤 그 내용을 함께 참고해 답을 생성하게 하는 방식입니다. Lewis 등의 2020년 논문은 RAG를 사전학습 생성 모델의 매개변수 기억과 외부 문서 색인이라는 비매개변수 기억을 결합하는 접근으로 설명했고, IBM Research는 최신·검증 가능한 지식 기반으로 대규모 언어 모델의 답변을 근거화하는 AI 프레임워크로 설명합니다. 기관별 정책이나 업무 매뉴얼을 RAG 데이터로 구축한다는 말은, AI가 일반 지식만으로 쉬운 글을 만들기보다 해당 기관의 문서와 용어를 찾아 참고하도록 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다만 검색된 문서를 붙였다고 해서 쉬운 정보의 정확성, 누락 없음, 사용자 이해 가능성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므로 전문가 감수와 실제 사용자 검증이 함께 필요합니다. | Lewis et al., 「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for Knowledge-Intensive NLP Tasks」(2020), IBM Research, 「What is 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RAG)?」. ↩
